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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름
  • 설명
  • 황제 카를 5세
  • 신성 로마 황제 막시밀리안 1세가 붕어하고,그 지위를 노리는 자들의 야망이 들끓기 시작했다. 합스브루크 가문의 세력을 키우고 싶었던 에스파니아의 왕 카를 5세와,합스브루크 가문의 손으로부터 국토를 지키고 싶었던 프랑스의 왕 프랑소와 1세. 이 두 사람이 황제의 자리를 두고 싸우게 된다.
  • 맘루크 왕조 멸망
  • 포르투갈의 인도 도달과 함께 홍해가 봉쇄되면서,베네치아의 향신료 교역은 와해 직전 상태가 되었다. 그러나 오스만 투르크의 홍해 진출로 인해 포르투갈의 인도 점유에도 그늘이 드리워지자,베네치아는 향신료 교역의 부활을 꿈꾸며 숨을 죽이고 때를 기다렸다.
  • 프레베자 해전
  • 서쪽 지방에까지 침략의 손을 뻗어 광대한 영토를 손에 넣은 오스만 투르크는,지중해의 제해권을 장악하는 것을 다음 목표로 삼았다. 그 계획을 눈치챈 신성 로마 제국은 로마 교황에게 구원을 요청했으며,오스만 투르크를 저지하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 파비아 전투
  • 합스브루크 가문에게 영토를 빼앗긴 프랑스 발루아 가문은 전부터 영유권을 주장해온 이탈리아 반도로 눈을 돌렸다. 이에 위기감을 느낀 로마 교황이 구원을 요청하자,카를 5세는 곧장 군대를 움직여 프랑스 지배 하에 있던 밀라노를 순식간에 탈환했다.
  • 포토시 은광 개발
  • 신대륙에 도달한 유럽인은 놀람을 금치 못했다. 거기에는 고도의 문명과 풍부한 귀금속이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귀금속이 일용품으로 사용되고 있는 장면을 본 유럽인들은 황금향「엘도라도」가 실제로 존재한다며 술렁이기 시작했다.
  • 가격 혁명
  • 항해자들이 바다를 넓혀감에 따라 세계의 무역 구조가 격변했다. 먼 동방으로부터 신기한 물건이 유입되기 시작한 것이다. 비슷한 시기,신대륙의 은광에서는 대량의 귀금속이 산출되어 유럽으로 흘러들게 되었다. 화폐로 쓰이던 은이 대량으로 유입됨에 따라 물가의 균형이 파괴될 것이라고 경고하는 사람도 나타났다.
  • 포르투갈 합병
  • 해양 제국의 지위를 굳힌 에스파니아와 포르투갈이었지만,포르투갈 왕가의 대가 끊어지면서 양국의 균형은 깨지고 만다. 이베리아 반도 통일을 계획한 에스파니아는「동군연합」을 통해 포르투갈을 지배하고자 포르투갈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 드레이크의 세계일주
  • 콜롬의 신대륙 발견,인도 항로 확립,마젤란의 세계일주…. 미개척지를 향한 희망을 품은 사람들은 앞다투어 항해를 떠났는데,그 중에는 잉글랜드의 해적 프란시스 드레이크도 있었다. 그는 각 지역에서 약탈 행위를 하며 항해하였고,국고의 몇 배에 달하는 보물을 가지고 귀항했다.
  • 아르마다 해전
  • 악화되었던 에스파니아와 잉글랜드의 관계는,잉글랜드 궁정에서 자국 사략선이 에스파니아 선박을 약탈한 사실을 묵인하자 회복 불가능한 상태가 되고 말았다. 굴욕을 참다 못한 에스파니아는 급기야 잉글랜드를 향해 함대를 출항시키기에 이르렀다.
  • 네덜란드 독립운동
  • 유럽의 국제 거래지로 번성했던 네덜란드는 에스파니아에서 징수하는 무거운 세금에 허덕이고 있었다. 탄압으로 인한 사람들의 반발도 거세지고 있었다. 결국은 의용군「바다 여단」이 결성되었고,독립 궐기가 눈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 포르투갈,세우타 공략
  • 먼 옛날부터 해상교통의 요충지였던 세우타는 포르투갈의 침략을 받아 함락될 위기에 처했다. 이에 에스파니아는 세우타 탈환을 위한 군사계획을 진행시켰다.
  • 네크메르 전투
  • 혁신적인 사상을 가졌던 얀 후스는 신성 로마 황제 지기스문트의 명으로 화형에 처해졌다. 이를 계기로 보헤미아와 폴란드에서는 신성 로마 제국을 향한 반발이 급속도로 커졌으며,의용군의 군사 봉기로 인하여 마침내 전쟁으로까지 발전했다.
  • 프랑스 내란
  • 잉글랜드와 동맹을 맺고 있던 부르고뉴 공이 프랑스와 평화 회의를 열고자 했다. 이대로는 전세가 역전될 것이라고 판단한 잉글랜드는 회의에 참가하기로 결심했다. 부르고뉴 공을 사이에 둔 잉글랜드와 프랑스의 교섭전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 아조레스 제도 도달
  • 엔리케 항해왕자의 모험은 서쪽 바다에서 아조레스 제도를 발견하기에 이르렀다. 그보다 더 서쪽 땅에는 금과 은이 숨어 있는 신세계가 있다고 한다. 각 나라들은 중계항으로서의 큰 발전이 기대되는 이 섬에 먼저 도달하고자,앞다투어 아조레스를 향해 출발했다.
  • 금각만 전투 1
  • 오스만 투르크의 압도적인 군세에 비잔틴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은 함락되고 말았다. 금각만에서 탈출을 시도하던 비잔틴 병사들이 해전에서 오스만 제국을 향한 최후의 저항을 펼치고 있었다.
  • 활판인쇄술 실용화
  • 종이에 활자를 인쇄하는 기술인 활판인쇄술이 독일에서 발명되었다. 이 역사적인 발명 덕분에 정확한 문서의 대량 보급이 이루어졌다. 국력을 키우고 싶었던 각 국가들은 보다 먼저 이 기술을 얻고자 행동을 시작했다.
  • 황제 프리드리히 3세
  • 오스만 투르크의 위협을 받던 헝가리는,마차시 왕을 받들어 신성 로마 제국령 오스트리아로 진격했다. 이는 비잔틴 제국의 멸망을 알아채고 눈치만 살피던 프리드리히 3세 대신,마차시 왕이 신성 로마 제국의 지위에 오르도록 하기 위한 진군이었다.
  • 이베리아 동란
  • 포르투갈의 왕비 후안나와 이사벨은 카스티야의 왕위 계승을 두고 대립했다. 포르투갈을 배후에 둔 후안나와 카스티야 내에서 많은 지지를 받던 이사벨의 싸움은 그 치열함이 극에 달했고,마침내 무력투쟁으로까지 번지고 말았다.
  • 희망봉 도달
  • 「동방에 있다는 프레스테 조안의 나라를 찾기 위해」라는 큰 목표를 가진 포르투갈은,아프리카 대륙을 남으로 전진하며 새로운 항해도를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바르톨로메오 디아스가 이끄는 함대가 아프리카 남극의 희망봉에 도달했다. 찾고 있던 나라 역시 금방이라도 발견될 것 같았다.
  • 신대륙 도달 1
  • 에스파니아의 지원을 받은 크리스토발 콜롬은 대서양 서쪽으로 전진해 마침내 신대륙에 도달했다. 이 사건은 많은 유럽 제국에 강한 영향을 미쳤다. 이후 국가의 지원을 받은 항해자들은 신대륙에 숨어 있는 부를 얻기 위해 앞다투어 바다로 향했다.
  • 페스트 유행
  • 해상교역이 번성하면서 해로를 통해 전염병이 각국에 전염되었다. 그중에서도 페스트는 각지에서 맹위를 떨쳤고,그 위협은 동양과 서양을 잇는 교역의 요충지이던 베네치아로까지 번졌다. 베네치아는 일찍이 프랑스에서 실시했던 검역제도를 개량하여,이 공포의 전염병에 대항하고자 했다.
  • 피렌체 번영
  • 과거에 정적에게 패해 피렌체에서 추방당한 메디치 가문이었지만,이듬해 새로운 정변으로 피렌체에 귀환할 수 있었다. 메디치 가문의 당주 코시모는 막대한 부를 가진 은행가로서 그 힘을 발휘하여 피렌체의 정치에 개입해갔다.
  • 서아프리카 도달
  • 세우타로 진출한 포르투갈은 그 기세 그대로, 아프리카 서해안까지 항해 구역을 넓히고 있었다. 항해왕자라고 불리는 엔리케의 지시에 따라 카보베르데에 도착한 뒤 더욱 남진하여 인도에 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움직임이 더욱 빨라졌다. 이에 뒤지지 않게 다른 국가들도 아프리카 남진에 주력하기 시작한다.
  • 정략결혼의 결말
  • 부르고뉴 공 샤를은 딸을 합스브루크 가문의 막시밀리안과 약혼시켰다. 신성 로마 황제의 자리를 노리는 샤를과,부르고뉴 공의 경제력을 원하는 합스브루크 가문의 진심은 표면상으로는 일치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결혼은 좀처럼 이뤄지지 않았고,차기 신성 로마 황제 자리는 혼돈에 빠졌다.
  • 프랑스,이탈리아 침공
  • 프랑스 왕 샤를 8세는 나폴리 왕국의 왕위 계승권을 주장하며 이탈리아를 침공하기 시작했다. 로마 교황의 아들로 젊어서부터 추기경의 자리에 오른 체자레는,프랑스와 이탈리아제국 사이의 싸움에 농락당했다. 각국은 서로의 목적을 가진 채 이탈리아 반도를 더더욱 어지럽혀갔다.
  • 이탈리아 반도 동란
  • 프랑스의 이탈리아 개입이 이어지는 동안,체자레는 한가지 야망을 품고 있었다. 아버지인 로마 교황이 샤를 8세를 잃은 프랑스와 동맹을 맺자,체자레는 프랑스 군의 힘을 빌려 이탈리아 각국으로 진군하며「이탈리아 반도 통일」이라는 야망을 실현시키고자 했다.
  • 사라고사 조약 체결
  •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이 증명되면서,에스파니아와 포르투갈이 세계를 분할하기 위해 맺었던 토르데시야스 조약의 효과에 의문점이 생겨났다. 분할선이 2개가 되지 않으면 분할의 의미가 없기 때문이었다. 두 해운대국은 다시 한 번 영토를 둘러싸고 다툼을 시작했다.
  • 에스파니아 파산 6
  • 신대륙에서 유입된 대량의 은은 서양 경제에 큰 영향을 끼쳤다. 특히 인접국과의 전쟁과 원양으로의 항해 등으로 바닥을 드러내려 하던 에스파니아의 국고는 결국 한계에 달했다.
  • 레판토 해전
  • 프레베자 해전 이후로도 지중해 제해권을 사이에 둔 서양제국과 오스만 투르크 사이의 갈등은 계속되었다. 그러던 중 오스만 투르크가 베네치아령 키프로스 섬을 침공하였다. 베네치아를 중심으로 한 카톨릭 교국은 대함대를 조직해 이에 반격했다.
  • 잉글랜드 동인도회사 설립
  • 네덜란드가 단독으로 인도보다 먼 동남아시아에 도달했다는 정보는 서양제국을 놀라게 했다. 아르마다 해전 전후로 급격히 해운국으로서의 힘을 기르기 시작하던 잉글랜드도 큰 자극을 받게 되었다. 잉글랜드는 국책으로 동인도회사를 설립하여 동남아시아 진출 준비를 서둘렀다.
  • 네덜란드 대두
  • 네덜란드 독립의 기운은 세기를 넘는 동안 더욱 강해졌고,그 상선은 보다 더 적극적으로 원양에 진출하게 되었다. 특히 동남아시아 교역에 있어 독자적인 교역로를 개척하여 이익을 독점하려 했으나,잉글랜드를 비롯한 다른 나라들이 이를 가만히 보고만 있을 리가 없었다.
  • 삼십년전쟁
  • 종교 문제를 야기시킨 대립은 이윽고 국가간의 충돌로 이어지고 말았다. 스웨덴은 프로테스탄트 해방을 구실로 전쟁에 개입하여,대군을 이끌고 독일 영내에 침입했다. 스웨덴과 신성 로마 제국의 주력부대가 서로 격돌할 것이 눈에 보이는 가운데,해상에서도 주력부대에 합류하고자 하는 스웨덴군과 제국군이 전쟁을 일으키려 하고 있었다.
  • 베스트팔렌 조약 3
  • 전란은 길게 이어져 신성 로마 제국과 그 실권을 쥔 합스브루크 가문은 불리한 정세에 빠지고 말았다. 이 전쟁을 종결짓기 위해 시작된 교섭은 이윽고 카톨릭과 프로테스탄트의 보호,신성 로마 제국 영지의 양도 등을 의제로 유럽 전체에 관련된 대회의로 발전했다.

※ 아직 한국 서버에 적용되지 않거나 획득 불가능한 데이터도 모두 포함된 리스트 입니다.